호떡은 보통 길거리 음식이거나 중국에서 전해진 시장 음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호떡의 이름을 살펴보면 호떡의 호는 오랑캐를 뜻한다. 중국인들은 지금의 중앙아시아와 아랍 사람을 일컬어 호인이라고 불렀다. 이렇듯 호떡은 오랑캐인 호인들이 만들어 먹던 떡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쌀보다 밀이 더 많이 생산되는 지역에 살았던 오랑캐들은 밀가루를 반죽해 화덕에 굽거나 기름에 튀겨 먹었다. 후한서 <오행지>에는 서역의 풍속에 빠져 지낸 영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는 서역의 옷을 입고 호떡을 먹었으며 황실의 친척과 귀족들이 모두 그 모습을 따랐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의 한 승려가 당나라에서 수행할 때 쓴 기행문을 보면 입춘을 기념해 황제가 절에 특별 선물로 호떡을 보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렇게 보듯 호떡은 군것질거리가 아니라 귀족들이 먹던 고급 요리였던 것이다.
호떡은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오기까지 먼 길을 걸어왔다. 우리나라에 처음 전해진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화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호떡도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대장경의 조판으로 인쇄술의 발달과 출판 기술에 큰 공헌을 하였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대장경판은 조선 시대에 다시 새긴 것(보유판)과 일제 강점기 때 다시 새긴 것까지 합하여 총 81,352판(板)이나 된다.
경판의 개당 총 길이는 68 혹은 78센티미터이며 폭은 약 24센티미터, 두께는 2.7~3.3센티미터의 범위이다. 무게는 경판의 재질에 따라 4.4킬로그램까지 나가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3∼3.5킬로그램 정도이다. 경판의 재질은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왔으나 전자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산벚나무와 돌배나무가 대부분이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경판의 수는 81,352장이다.
팔만대장경의 경판 숫자는 1915년 조선총독부가 처음 81,258장으로 집계했다. 정부가 1962년 국보 지정 당시 별도의 확인 작업 없이 이 숫자를 그대로 적용하면서 그동안 정확한 숫자, 훼손 여부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이에 따라 2000년부터 실시한 ‘해인사 고려대장경 디지털 영상화 및 기초자료 데이터베이스 사업’, 2014년에 수립한 ‘해인사 대장경판 중장기 종합 보존관리계획’에 따른 조사 등을 통해 최종적으로 81,352장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81,352장이라는 숫자에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 1937년에 제작, 추가된 36개 경판이 포함되어있는 수치이다. 이에 대한 문화재적 가치의 견해들이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엇갈리는만큼, 학문적, 사회적 합의가 절실한 상황이다.
출처 : 길거리 인문학도 포스트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852499&memberNo=2301197&vType=VERTICAL